<페미니스트>: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 대한민국 언어 개정에 대한 시민단체의 활동 | Melbourne Asia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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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왑닉아담 박사 (Dr Adam Zulawnik) 지음/번역
김은경 (Stellar Kim) 번역감수

#미투(MeToo) 운동은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도 큰 화제였고 2개의 시민 사회 기구가 적극 참여했다. 또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언어 변화와 표준화를 관장하고 있는 국립국어원과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보였다. 

몇년 전 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미투(MeToo) 운동에 2개의 시민 사회 기구가 적극 참여 중이다. 대한민국 언어의 변화 및 표준화를 담당하는 국립국어원은 아주 흥미로운 상호 작용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 중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으로 표기)은 가장 주목 받는 기관으로 손 꼽을 수 있다.  

지난 1994년 공식 설립된 참여연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참여연대의 뿌리는 대한민국이 두 번째의 쿠데타를 거치며 전두환 정권의 권위적인 지배에 놓쳐졌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울한 배경 속에서 태동된 참여연대는 민주주의, 인권 및 사회 정의를 옹호 및 확립하고자 하는 다양한 진보그룹 및 개인들의 연합으로 생성된 시민단체다. 참여연대는 정치적 개혁과 민주주의 제도 수립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 및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양극화된 사회의 권리와 복지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등,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또 정부의 투명성과 통제 가능성을 증진시키고 참여 민주주의의 길을 촉진해 왔다.

한편 여연은 한국 여성 개발 연구소, 여성 민주사회, 한국 여성 사회 복지 협회 등을 포함 한 21 개의 유력 여성단체의 협조로 1987년, 결성 출범되었다. 이들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의 여성들이 직면한 시급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통합된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1991년에 설립된 국립국어원의 주요 목표는 한국어에 대한 연구 및 촉진을 통해 한국어의 정확성 내지 명확성 및 다양한 맥락에서의 효과적인 사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광범위하게 언어를 연구하고 사전 편찬 기획을 진행하며 또한 문법 규칙, 맞춤법, 띄어쓰기 규칙을 수립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한 많은 활동의 결과물 중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는 <표준국어대사전> 발간일 것이다. 이 사전은 대한민국 온라인 메가 포털 네이버(Naver)를 통해 언어생활의 핵심 역할을 하는데, 영어권과 대조해 보자면 옥스포드 영어 사전과 같은 위치를 갖는 것이다. 네이버 내에서 이만큼의 두드러진 위치를 갖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은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국민을 포함한 한국어 사용자에게 필수적인 자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사전은 일부 성별/젠더 및 인종에 편향된 낱말의 정의로 인해 적지않은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대한민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인도-유럽어권 언어일본어를 비롯하여 다른 다양한 언어에서도 유사한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경우 참여연대 및 여연등과 같은 시민 단체가 언어 구축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보수적’ 접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점이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얼마 전 대규모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키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미투운동’과 연관되어 가장 두드러져  보인 사례는 바로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라는 낱말의 정의에 관한 논란이다.

2015년에 여연이 비난하고 나선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페미니즘’의 정의 (즉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자체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반면 여연은 국어원의 ‘페미니스트’ 정의에 관해서는 공문을 보내 강력한 반발 의사를 표했다.

여연은 기존의 정의가 페미니즘 운동의 폭넓은 성격을 완전히 무시하며 “현재 여연에서는 <페미니즘>을 ‘계급, 인종, 종족, 능력, 성적 지향, 지리적 위치, 국적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들’이라는 의미로, 또한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지적하였으며 ‘페미니스트’는 사실상 성별 불문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실천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므로 기존의 정의가 ‘페미티스트’를 본질적으로 오로지 ‘남성’으로 지정하는 데 있어 큰 문제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상술한 공문이 발송된 후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불분명하지만, 3년 뒤인 2018년에 국어원은 해당 단어의 정의를 수정했지만, 기존 정의 앞에 단순히 ‘예전에’라는 한 마디를 덧붙였을 뿐이었다. 즉, ‘예전에 여성에게 친절한 남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로 수정 편찬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과 관련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최정도 학예연구사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용례에서 ‘페미니스트’가 공처가 혹은 애처가로 쓰인 적이 있다. 예전 문헌을 읽을 때 참고하라는 차원으로 관련 정보를 남겨 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변명조의 답변을 한 것으로 보고 되었다. 그러나 <애처가>나 <공처가>는 오래된 옛말처럼 들릴지라도 한국어에만 한정된 문제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에 국정된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두 용어 모두 유사한 중국어 (중국어: 爱妻者, ài qī zhě; 妻管严, qī guǎn yán)와 동일한 일본어 등가어 (일본어: 愛妻家, aisaika; 恐妻家, kyōsaika)를 볼 수 있으며 각국 국어사전에 유사한 용법과 예문이 존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으로 손꼽힐 일본 국어 사전 중 하나인 디지털 다이지센 (일본어: デジタル大辞泉, dejitaru daijisen)에서의 ‘페미니스트’의 정의는 두 번째 항목의 끝에 ‘페미니스트’가 영어 ‘gallant’ (용감하다)’의 동의어임을 나타내는 보충 설명이 추가되었을 뿐 표준국어대사전에 게재된 수정 전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남녀평등주의자. 여성해방주의자. 여성권확장주의자.

여성을 소중히 대하는 남성.

[보충 설명] 영어로 번역하면 2의 의미는 “gallant”이다.

참여연대 출동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 정의 ‘수정'(즉 단 한 마디 ‘예전에’의 추가)이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 커지면서 참여연대의 청년단체인 ‘청년참여연대’는 2018년3월, 대한민국 국민 2,000여명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명을 모아 ‘정의 2항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청년참여연대는 해당 공문을 통해 국립국어원이 정한 ‘페미니스트’의 정의에 반발하며 이는 성차별을 지속시키고 한국에서의 성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완벽히 배치되는 일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참여연대는 공문에서 또한 ‘한국어가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소통의 도구로 잘 작동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송철의 국립국어원 전 원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또 여성주의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와 성평등 달성에 대한 어려움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대중 인식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촉진해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 다시 강도 높게 주장했다.  본 공문은 한국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크게 앞세우고 한국에서의 성평등을 향한 움직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MeToo 운동의 중요성으로 결론지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 문제 뿐 아니라 국립국어원 발간 표준국어대사전에 게재 된 ‘부부’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결혼’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등, 다른 성별에 편향된 항목도 대한민국 내 언론의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이러한 정의들을 수정하기는 커녕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대한민국에서 혼인평등권과 LGBTQIA+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은 큰 문제로 언론의 관심과 인권위원회의 주목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 내 학교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행 문제가 커지자 휴먼라이츠워치리스트 (국제인권 워치리스트)의 주목을 받아 그 개요로 기사와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2023년 초에는 혼인평등권과 관련,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며 동성 커플에까지 혼인권을 확장시키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또 이성과 동성 관계없이 혼인에 준하는 ‘생활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현재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국립국어원은 성별 편향이 드러나는 정의에 대한 수정 요구에는 아무 대책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왔으나 2021년말, 제 12대 원장에 취임 한 장소원 원장이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행보를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교수이며 여성인 장 원장은 국립국어원 직원들을 성희롱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률 도입을 주도했으며 취임 100일 기념 만찬에서 “제대로 된 국어사전 보유 여부는 선진국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척도”라며 표준국어대사전 전면 개편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사전에 실린 예문만 해도 1900년대 초중반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며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현재의 언어 생활과는 의미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아 전반적인 개편 작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같은 기사에 의하면 국립국어원은 성차별적 용어나 장애인 및 여성비하 예문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정에 나서면서 미용실, 양산 등의 뜻풀이에 나오는 해설 중  ‘여성’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바 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어에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장소원 원장의 비전은 칭찬할 만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하는 데 있어 재정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장소원 원장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 운영 비용의 연간 예산은 2억 원인 반면, 제안된 편찬의 첫 단계(2022년-2026년)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70억 원 정도 예상된다.

또한 이보다 ‘큰 그림’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난 언어 사용은 단순히 남성 중심이며 남성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 및 성소수자가 직면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참여연대와 여연과 같은 시민 단체들의 문제 제기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몇십 년간의 상당한 발전, 특히 ‘한강의 기적’과 한류 열풍을 통해 나타난 대한민국의 급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더 관대하고 수용성이 있는 사회가 종종 요구되고 있다.

K나라 : ‘우리나라아니면모두의 나라’?

언어를 살펴보는 본질로 다시 돌아와보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평가 수정되어야 할 정의 및 예문이 산재해 있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과도한 자기민족중심주의(ethnocentric) 혹은 부족주의(tribalistic)적인 경향도 많이 나타나 있다.  한민족(즉 국가가 아닌 민족)과 한국 문화유산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이른바 ‘우리말’에는 ‘우수’하거나 ‘우월’하다는 예문들이 아주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수성’이라는 낱말을 검색하면 68개의 예문이 나오며 이 중 34개가 명백하게 한민족, 한국어, 또는 한국 문화유산과 관련되어 있다.

첫 세 개의 예문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 ; 2) “이번 박람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전자 기술의 우수성이 돋보였다.” 3)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한 사실이다.”

특히 언어적으로 자기민족중심주의적인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어휘는 대명사인 ‘우리’일 것이다. 이 낱말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사회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의 가족 및 개인 소유와 관련하여 사용되며 얼핏보면 영어의 ‘my’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상 민족주의적/자기민족중심주의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그런 의도를 갖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어들은 사회과학자 마이클 빌리그의  ‘시시한 민족주의(banal nationalism)’의 좋은 일례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어를 살펴볼 때 띄어쓰기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자가 폐지되면서부터 한국어는 일반적으로 띄어쓰는 언어로 변했기에 ‘우리’의 뒤에 올 단어는 많은 인도유럽 언어의 ‘our’와 마찬가지로 띄어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난히 ‘나라’ (혹은 ‘말’과 이와 유사한 문화유산)와 같은 특정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 의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붙여 써서 새로운 고유명사를 구성하게 되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라는 표현은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널리 사용되어서인지 국립국어원은 1999년에 철자규칙을 붙여쓰는 것으로 개정하여 (한민족이 쓰는 말인 한) ‘한국/코리아’의 동의어이자 사용이 권장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전에는 ‘우리^나라’만 허용되었던 것으로 보면 의도적인 언어 변형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포털의 Q&A 페이지에서 ‘우리나라’를 검색하면 국립국어원이 한민족만이 한국어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높은 자기민족중심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언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우려스러운 사용 규정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2022년에는 ‘고등학생’이라는 사용자가 ‘우리^말 바로쓰기’와 ‘우리말 바로 쓰기’ 중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하여 질문했으며 국립국어원은 이에 “‘우리나라 사람의 말’을 일컫는 ‘우리말’은 한 단어이므로 이를 표현하는 맥락이라면 ‘우리말 바로 쓰기’처럼 띄어 쓰시기 바란다”고 답한 바가 있다. 놀랍지 않게도 ‘우리나라’ 자체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매우 자기민족중심주의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어 있다: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이르는 말.”

이러한 동향과 규정들은 특히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높아지는 지구인의 관심과 함께 한국학(그리고 대한민국 ‘소프트파워’ 기획)의 미래를 고려할 때 우려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한국어에 능통하고 대한민국 사회와 더 깊이 접하고 싶어하는 고급 학습자들에게 심각한 매력 감소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언이폐지하면 ‘우리’는 ‘한국인’이 되기 전에 모두 ‘우리 한민족’이 아닌 ‘인간’이니 참여연대와 여연과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국립국어원에게 여성과 한국 소수자는 물론이고 민족이 아닌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 점점 이바지하여 나라에 여러 모로 기여하는 비한국인 체류자, 영주민과 이른바 ‘귀화 한국인’의 의견과 처지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Main image credit: Tomasz Tuszko/Flickr; 토마쉬 투슈코/플리커 .